[기고]국토의 디지털 전환, 법제도부터 바꾸자

[기고]국토의 디지털 전환, 법제도부터 바꾸자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등 혁신 기술이 현실 세계의 디지털 전환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디지털 전환은 산업 혁신을 견인하고 국가경쟁력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다. 정부도 이를 인식해 지난해 7월 디지털 뉴딜 4대 분야 12개 추진 과제를 발표했다. 이 가운데 사회간접자본(SOC) 디지털화는 디지털 트윈을 근간으로 하기 때문에 국토에 대한 디지털 전환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국토는 지형, 지물, SOC 등 다양한 요소들로 구성돼 있다. 국토공간에서는 크고 작은 현상이 끊임없이 발생한다. 또 국토는 인간사 모든 활동이 이뤄지는 무대다. 그 활동목적을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국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어느 시대에나 국토에 대한 다양한 자료가 만들어져왔다. 그 중 가장 대표 자료가 지형도다.

우리나라 최초 지형도는 네덜란드의 경제 원조로 1968년에 제작된 축척 2만5000분의 1 지도이다. 1974년에 남한 지역 전체를 포괄하는 764도엽이 완성됐고, 5000분의 1 대축척 지형도 제작이 시작됐다. 이들 지도는 1960∼1970년대에 고속도로·산업단지와 같은 SOC 건설 청사진을 그리는 밑바탕으로 이용됐다. 이 지형도를 제작하는 기준, 절차, 방법 등을 규정한 측량법은 1961년에 제정됐다.

컴퓨터와 인터넷 등장으로 시작된 정보시대에 접어들어 아날로그 지도는 수치화됐다. 수치지도로 전환하는 사업은 1995년에 시작됐다. 이 사업으로 지형도뿐만 아니라 지적도, 주제도 등 다양한 아날로그 지도가 수치지도로 전환됐다.

그 결과인 수치지형도, 영상정보, 구지도(광복 이전 지형도 등) 등 60여종의 수치지도를 국토지리정보원이 무상 제공하고 있다. 이런 수치지도들이 경제, 사회, 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예컨대 2000만대가 넘는 자동차의 내비게이션, 우리나라 전체인구 90% 이상이 사용하는 스마트폰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지도 기반 서비스다.

정보시대에 요구되는 수치지도 제작을 위해 측량법은 공간정보관리법으로 개정됐다. 또 수치지도(공간정보) 구축 및 활용 촉진을 위해 공간정보법과 산업진흥법이 새로 제정됐다. 그러나 이 법제도에 의한 수치지도들의 내용, 구조, 품질 등은 높아진 수요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 정보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더 높은 정밀도와 해상도, 더 짧은 갱신 주기의 수치지도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법제도는 다양한 분야에서 디지털 전환의 심화에 따른 더 높아진 수치지도 수요 변화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 법제도 개선이 필요한 이유다.

최근 혁신적으로 발전하는 IoT, AI, 자율주행차, 드론 등 기술은 사람·사물·공간 등을 지능화하고 가상화해서 연결해서 상호작용하게 한다. 현실 국토를 구성하는 요소 개체도 가상 개체로 디지털 전환된다. 이 가상 개체는 현실 국토의 공간적 위치 체계로 특성화된다. 가상 개체들은 위치 기반으로 연결돼 통합된 가상 국토를 형성한다.

가상국토는 현실국토와 서로 다른 별개가 아니라, 상호작용하는 디지털 트윈(쌍둥이) 혹은 디지털 페어(짝)가 된다. 이를 통해 현실국토의 변화를 가상국토에서 실시간 감지해 분석 및 예측하고, 그 결과가 현실국토에 반영되는 동기화로 현실과 가상이 융합된다.

디지털 트윈 국토를 위해 현실 국토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수준으로 현실 개체의 3차원 디지털 전환이 요구된다. 그러나 현재 수치지도는 축척 기반의 2차원 점·선·면 또는 이미지 중심으로 제작되고 있다. 또 디지털 트윈 국토는 현실 개체의 변화 시점에 대응한 실시간 자료를 요구한다. 그러나 현재 수치지도는 2년 주기를 기본으로 정기 갱신되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법제도는 국토에 대한 디지털 트윈 요구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것이 법제도를 바꿔야 하는 또 다른 이유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의 도움으로 아날로그 지도 제작 기술을 배웠다. 선진국보다 국토의 디지털 전환을 늦게 시작했다. 지금까지 추진한 지도 제작이나 디지털 전환이 기대에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지도 제작이나 수치지도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 역사였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성공사례라고 자부할 수 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향후 정보기술의 혁신적 발전으로 디지털 전환이 심화되고, 이를 통해 대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즉 3차 산업혁명으로 시작된 디지털 전환이 심화되고 진화될 것이며, 이는 4차 산업혁명을 이끌 마중물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더 늦지 않게 국토 공간을 4차 산업혁명의 활동 무대로의 위상과 역할에 적합하도록 디지털 전환을 해야 한다. 때마침 고품질 위성영상을 확보할 수 있는 국토위성이 성공적으로 발사됐다.

이런 환경 변화에 맞춰 기존 법제도를 바꿔야 한다. 이를 위해 법제도의 기본사상을 현재 공급자 중심에서 다양한 분야의 프로슈머 중심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디지털 트윈 국토에 관한 규정은 기본 틀과 기준 중심으로 최소화해야 한다. 그리고 다양하고 수많은 프로슈머가 참여하는 거버넌스 활성화를 촉진하는 내용이어야 한다. 이를 통해 남을 따라가는 추격자에서 앞서 나가는 선두주자로 나설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최병남 연구그룹미래세상 이사(전 국토지리정보원장) bnchoe55@rgmirae.re.kr